권지용의 USB 앨범과 음반 논란에 관하여 음악글


한국의 저작권법 제 1장 2조 5호는 음반을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음반"은 음(음성·음향을 말한다. 이하 같다)이 유형물에 고정된 것(음을 디지털화한 것을 포함한다)을 말한다. 다만, 음이 영상과 함께 고정된 것을 제외한다.> G-Dragon의 USB 앨범을 국가 공인 음반 집계 단체인 가온차트에서 위 법항을 근거로 들며 음반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잘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참고로 G-Dragon의 이번 신보 <권지용>은 USB 메모리스틱 형태로 피지컬 앨범이 발매되었으며, 그 메모리스틱 안에는 음원이 아니라 음원을 다운받을 수 있는 코드가 들어있다.

다른 얘기에 들어가기에 앞서, 먼저 음반을 규정하는 저작권법을 보자. 음반은 음성과 음향을 유형물에 고정시킨 것을 말한다고 한다. 우선 논란의 여지가 많은 이 법부터가 문제다. 음이 유형물에 고정되었다고 해서 음반으로 불릴 것 같으면 내가 지금 글을 쓰고 있는 내 컴퓨터도, 당신이 이 글을 읽고 있는 그 휴대폰도 음반이라고 부를 수 있어야 한다. 실제로 미국의 저작권법에선 저작권의 최초 발현을 물리적 저장매체에 저작물이 기록된 순간으로 정의하며, 이는 종이에 그린 악보와 하드 디스크 등을 모두 포함한다.
또한, 가령 내가 노이만 U87과 같은 하이엔드 마이크로 무향실에서 연주된 John Cage의 4'33"을 녹음했다고 가정해보자. 그리고 이를 현대음악에 지대한 공헌을 끼친 존 케이지에게 헌정하기 위해 장장 4분 33초동안 디지털 노이즈 하나 잡히지 않은 깔끔한 침묵 트랙을 CD와 같은 피지컬 미디어에 고착시킨 후 발매했다고 하자. 이건 음반이 아닐까? 애초에 음(音)은 소리를 말하며, 소리의 부재를 녹음한 이 앨범엔 저 법항에서 말한 "음"이 없다. 법 자체가 애매하다. 사실 이 모든 분쟁의 가장 큰 문제는 앞서 말한 가온차트도, G-Dragon의 앨범을 음반으로 인정한 한터차트도 아니다. "음"과 같은 애매하고 비전문적인 용어로 음악 저작권법의 가장 기초가 되는 법항을 만든 입법자들의 잘못이 더 크다.

앞서 구구절절 쓴 내용이 전부 잡설이고 사족이라고 보며 말장난하지 말라는 사람도 있을 수 있을테니, 이쯤에서 가온차트 얘기로 넘어가보자. LP가 eight-track으로, eight-track이 카세트로, 카세트가 CD로, 또 CD가 디지털 음원으로 넘어오기까지의 타임라인을 살펴보면, 모든 분야에서 기술의 진보가 그러하듯, 변화와 발전은 기하급수적인 가속도가 붙은 채 달려간다. 나올게 다 나왔다는 발상은 안일한 세상이다. 가령, 당장 내일 누군가가 주사기로 청취자의 몸에 마이크로칩을 주사하면 몸 내부의 진동을 통해 앨범을 들을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낸다고 해도 놀랍기야 하되, 크게 이상할건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하물며 음원과 사진, 뮤직비디오 등을 넉넉히 담을 수 있는 4GB짜리 USB 메모리 스틱에 다운로드 코드 넣어줬다고 그게 음반이 아니라고 집계에 넣네 마네 하는건 기술의 진보를 민망할 정도로 못따라오는 앞뒤 꽉 막힌 사람들이나 할 소리이며, 이 와중에 가온차트는 창피해서 어디 숨어서 해도 모자랄 얘기를 언론에 보도자료까지 냈다. 묻겠다. 그렇다면 권지용의 이번 앨범을 사서 코드를 사용해 전곡을 그 메모리스틱에 담은 팬은 음반을 가내수공업으로 제작한 것인가? 뮤직 비즈니스에 종사한다는 사람들이 좀 말이나 되는 소리를 했으면 좋겠다.

또한, 통상적으로 CD의 한계는 750MB이며, CD에 담기는 다운샘플링된 16bit, 44.1kHz의 마스터 음원은 보통 3~4분 사이면 약 35~45MB 사이의 용량을 차지한다. 40MB라고 계산했을 때 스무 곡이 빠듯하며, 특히 최근 들어 고용량 저장매체의 소형화와 대중화에 따라 대두되는 MQS음원들 (24bit, 48kHz)은 곡당 70~80MB를 훌쩍 넘는 일이 허다하다. 이미 CD를 비롯한 피지컬 미디어의 시장이 음원시장의 등장과 함께 사실상 무너지긴 했지만, 어찌됐건 피지컬 미디어라는게 존재 자체를 하지 않게 되는 날은 아직 먼 얘기고, 없어지지만 않는다면 피지컬 미디어 종말의 그 날까지 끊임없는 변화를 겪을 것은 충분히 예견된 일이었다. 그런 점에서 가온차트의 대응은 흐름의 순간에 조금 늦은 정도가 아니라 이미 물이 마르고 강바닥이 갈라진 옛 강터에 서서 흘러간 물을 원망하는 수준이다. 그만큼 뒤쳐졌고, 촌스럽고, 후졌다.

모든 예술은 작가의 손에서 나오며, 작가만이 자신의 작품에 대한 유의미한 정의를 내릴 수 있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고깃덩이를 들고 와서 "이게 내 음반이요"하는 머리에 꽃 꽂은 소리를 하는 수준으로 상식 밖의 일만 아니라면, G-Dragon이 메모리 스틱에 다운로드 코드 넣어놓고 "이게 내 음반이다"라고 했을 때 그냥 군소리 없이 인정해주는게 맞는 처사다. 아니, 사실 인정이고 자시고도 필요없다. 그가 음악을 만들고 그걸 어떤 형태로 제작하여 음반이라고 부르겠다는 의지 하나면 되고, 그걸 음반이네 마네 할 자격은 "음" 따위의 뜬구름 잡는 단어를 써서 저작권법을 써내려간 사람들 따위에게 없다는 것이다. 음반의 포맷조차도 현대예술이 이만큼이나 대중예술에 침투한 요즘 세상에선 충분히 작가주의의 일부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피지컬 미디어 시장이 급락하며 아티스트들이 미니앨범, (정규가 끝끝내 나오지 않는) 싱글앨범, (무엇의 extension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EP 앨범 등 변칙을 써서 피지컬 미디어로 음반을 찍어낼 때, 이게 음반이냐 아니냐, 혹은 이걸 미니앨범, 혹은 EP앨범이라고 부를 수 있느냐는 논란은 크게 일어나지 않았다. 그놈의 "음"이 "유형물에 고정"돼서였던 것 같다. 상업적인 수지타산의 이유가 됐건 예술적 목적이 됐건간에, 제작자가 앨범이라 부르면 한곡짜리 앨범도 앨범이라 칭할 수 있으며, 전극을 통해 뇌파를 자극해서 머릿속에서 음악을 듣는다는 착각이 들게 만드는 방식으로 전송하는 음반도 제작자가 음반이라면 음반인거다.

마지막으로, 모든 일에는 규칙과 규범이 필요하다.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사람들이 자유로운 표현 방식으로 만들어가는 예술의 세계에도 어느정도의 법과 제도라는 것이 필요하다는데 반대하는 입장은 아니다. 하지만 그 법이 이번 일과 같이 무고한 피해자를 내고 그의 작품을 제 멋대로 도륙낼 때, 우린 이 시스템에 대해 잘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난 사전 심의제를 깨부순 서태지와 그의 팬들의 얘기는 알아도, 저작권법 등 예술에 관한 수많은 법들을 입법하는데 공헌한 사람들은 단 한사람도 알지 못한다. 그리고 난 나름 진지하게 예술을 공부하는 사람이다. 예술가들의 생각과 자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스스로 예술가가 아닌 사람들이 남들과 많이 다른 표현 세계를 가진 예술가들의 표현 방식과 생활 양식을 규정하는 규칙들을 써내려갔다는 것에서부터 무언가 잘못됐다는 인식이 필요한 시기이다.

덧글

  • 슈3花 2017/07/10 14:41 # 답글

    이게 왜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당연히 음반입죠. cd도, tape도, vinyl도.
  • RNDMID 2017/07/14 21:33 #

    그러게요. 아직 이만큼이나 멀었나봅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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