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 Ringo Starr - We're On the Road Again Reviews



링고 스타가 그의 19번째 솔로 앨범 "Give More Love" 발매에 앞서 "We're On the Road Again"이라는 싱글을 발표했다.

록 음악의 원류로 돌아간, 기타 중심의 블루지하고 스트레이트한 로큰롤 곡이다. 여름 시즌을 겨냥하여 미리 발표한듯한, 제목 그대로 시원한 드라이브에 어울리는 기타 리프를 앞세웠으며, 오랜 친구이자 비틀즈의 멤버인 폴 매카트니가 베이스를 연주했다. 또한 이글스의 조 월쉬와 에드거 윈터가 각각 추가 보컬과 건반을 연주했으며, 토토의 스티브 루카터가 공동 작곡을 하는 등, 화려한 크레딧 라인을 자랑한다.

개인적으로는 60년대 블루스 로큰롤의 시그네쳐 사운드와도 같은 강한 다이내믹스의 피아노가 곳곳에 양념처럼 뿌려진게 마음에 든다. 곧 발매될 풀 앨범이 기대되는 싱글이다.

아이돌 학교 - 엠넷의 또다른 그림자 음악글


엠넷이 또 <아이돌 학교>라는 새로운 등용문 프로그램을 런칭한다.

돈을 주지 않아도 열과 성을 다할 노예 수준의 출연자들이 줄을 서는 포맷을 이렇게 계속해서 채택하는 이유는 역시 가성비적 측면과 quasi-reality TV가 유행인 현재 한국의 트렌드를 반영한 선택일테니 그렇다 치자.

하지만 방송계의 생리를 너무나도 잘 아는 PD와 작가진이, 아마도 성공을 이룬다 해도 대부분 치킨집이나 옷가게로 빠른 직종 전환을 하게 될 어린 청소년들의 꿈을 볼모로 잡고 잇속을 챙기는 꼬락서니는 정말이지 못봐주겠다. 프로듀스 101이나 6시즌째 진행되는 중인 쇼미더머니를 전혀 보지 않는 이유이고, Pick Me의 뮤직비디오를 처음 접했을 때 나도 모르게 안타까움의 눈물이 쏟아진 이유다.

영화, 음반, 방송에 걸쳐 사실상 대중문화계 오피니언 리더이자 독점기업인 CJ 엔터테인먼트가 책임감 있는 선택들을 했으면 좋겠다. 쇼미더머니부터 시작해서 기획 의도부터가 구멍 투성이인 언프리티 랩스타, 프로듀스 101에 이젠 아이돌 학교...

참가자 모집 포스터 하단에 써있는 "졸업과 동시에 그룹으로 데뷔"라는 문구가 가치 확립이 되지 않은 청소년들을 유혹한다. 이 합법적 쇼걸 구인광고가 현재 우리나라 문화계의 정점에 선 기업이 기획한 next big thing의 청사진이다.

당신이 엠넷의 컨텐츠를 서포트하는 소비자이거나 욕을 하면서도 챙겨는 본다는 회색분자라면, 부탁인데 한국 음악산업의 구조적 결함과 병폐에 대해 논하지 말길 바란다.

공연문화, 그 씁쓸함에 대하여 음악글


우리나라 라이브 뮤직 비즈니스가 잘 안되는건, 공연장에 갈 소비자들의 엉덩이가 무거워서가 아니라, 그냥 사람들이 음악 그 자체에 관심이 없고, 그저 음악을 자기 몸에 두르는 하나의 브랜드 상품으로 인식하고 음악을 평소에 듣지 않아서이다.

대형 아티스트가 오면 너도나도 표 못구해서 안달나면서 정작 모두들 셋리스트를 "예습"한다. 애초에 공연 보기 전에 곡들을 들어봐야 되고 "예습"해야되는 아티스트는 당신이 줄 서고 새로고침 광클해가면서까지 티켓을 구할 필요가 없는 아티스트이다. 콘서트라는게 내가 저 아티스트의 팬이라서 가는 사람들이 80퍼센트 이상이어야지, 10만원 넘는 티켓 사서 평소에 듣지도 않는 음악을 며칠간 귀에 때려박고 공연장 가서 "아 이노래~"하며 문화생활을 영위한다는 허상에 젖는 사람들이 절반에 달하면 안된다는거다.

"콘서트 고잉"도 하나의 문화고, 여가생활의 패러다임이고 패턴이다. 음악을 가볍게 받아들이고 내 인생의 bgm쯤의 의미로 두는게 문제는 없다. 요지는, 공연이라는 재화를 소비하는 패턴 자체가, 그 원리와 앞뒤가 뭔가 심히 뒤틀린 채로 한국에 어느순간 자리잡았다는 것이다. 공연 문화의 새로운 패러다임에 대한 거부반응을 보이는 고루함일 수 있지만, 어쨌든 공연은 live "music" event이다. 자리를 빛낸 여러분이 주인공이라고 아티스트가 아무리 입에 발린 말을 해도, 결국 쇼의 중심은 언제나 아티스트들과 그들이 연주하는 음악이라는거다.

근 몇년 사이, 많은 예술 컨텐츠의 소비는 굉장히 소비자 자신들의 자의식에 케이터링하는 형태를 보여왔지만, 비싼 관람료를 지불하고 들어간 미술관이나 콘서트장에서 자의식을 내려놓고 그저 나보다 몇배는 위대한 재능러가 뭘 했는지를 컨텐츠 자체로 흡수해보려고 노력할 때, 생각지 못했던 그 작품들의 이면들을 보게 되는것이다.

당신은 콜드플레이의 로고가 새겨진 공연장 입구의 철골 아치에서 사진을 찍어서 sns에 자랑하려고 티켓을 산게 아니고, 만약 그게 당신이 그 티켓으로 하고 남은 것의 전부라면, 왜 1년에 못해도 50만원 이상을 투자하는 당신의 "문화생활"이 그렇게 공허한지를 되돌아봐야 할 것이다. 자의식과 과시욕이 가득한 곳에 겸손과 배움이 들어앉을 자리는 없다.

Loudness War에 Spotify가 내미는 평화협정, 그리고 의구심 음악글


"Crucially, it is more beneficial to have a dynamic track turned up than to have a loud, compressed track turned down, so mixing and mastering above -14 LUFS for online audio is not a great idea." (원문 中)

별로 효과가 있을 것 같지도 않고, 무엇보다 기사의 저 문장에 전혀 현실성이 없는 것 같다. 거의 30년째 지속돼온 loudness war 속에서 이미 대중들의 귀는 웨이브 폼이 벽돌처럼 나오는 떡컴프 사운드에 익숙해져있다. 다이내믹스가 살아있는 트랙을 키우는게 다이내믹스가 죽은 트랙을 하향 노멀라이징 시켜서 트는것보다 당연히 더 좋지만, 이 기사는 대중의 취향과 psychoacoustics를 간과한다.

mp3와 wav의 음질 논란이 한창 시끄러울 때 많이 진행됐던 ABX 테스트들에서 많은 사람들은 A와 B의 차이를 구분해냈지만 어떤게 mp3이고 어떤게 wav인지는 맞추지 못했다. 이론적으로 생각하기엔 당연히 둘 사이의 차이를 구분하는게 가능하다면 음질이 좋은 wav를 골라내는게 가능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이 블라인드 테스트에서 mp3파일의 음질이 더 좋다고 손을 들어줬다. 무슨 뜻일까?

mp3 파일을 통한 음악 감상이 널리 퍼진지 벌써 15년이 넘었다. 사람들은 mp3 이상의 파일을 거의 찾아듣지 않으며, 발매되는 대부분의 곡들을 mp3 파일로 소비하고 넘어간다. 즉, 귀가 mp3에 맞춰지고, joint stereo 방식으로 구현된 스테레오의 공간감, 17kHz 위의 digital roll-off등, 기존에 아날로그를 효율적 용량으로 시뮬레이팅하기 위해 수렴할 수 밖에 없었던 mp3 압축방식의 한계로 인한 "열화"가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에게 무의식중에 mp3의 "사운드 캐릭터"로 자리잡았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더이상 wav는 mp3보다 "음질이 낫다"라고 받아들여지는게 아니라 "다르다"라고 받아들여진다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이론상의 사운드 퀄리티를 넘어서, 취향의 영역을 자극하는 음악이라는 매체의 특성상, 반직관적인 발상을 할 필요도 있다는 것이다.
처음 하던 얘기로 돌아가자면, 다이내믹스가 살아있는 음원이 벽돌 웨이브가 나오는 음원보다 우수한 해상도와 음악적 상승과 하강을 훨씬 더 잘 표현한다는데 이견을 둘 프로듀서/엔지니어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기나긴 loudness war와, 특히 최근 몇년간 유행해온 떡컴프 EDM 사운드, 디지털 오버드라이브가 잔뜩 걸린 808 사운드 등에 익숙해진 대중들이 loudness war에 맞서는 대책으로 나온 이 정책에 의도대로 반응할거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우선, 음반 제작자들이 절대 overall 레벨이 낮아진다고 해서 다이내믹스에 여유를 두는 믹스를 내놓지 않을 것이다. 만약에 실험적으로라도 일부 제작자들이 loudness war 이전 수준의 다이내믹스를 가진 음원을 만들어낸들, 대중들은 뭐 때문인지도 모른 채 널널한 헤드룸을 "뭔지 모르게 허전하다"라고 표현하며 자연스레 다시 떡컴프 사운드를 찾아갈 것이고, 제작자들은 다시 그 입맛에 맞춘 믹스를 제작할 것이라 본다.

Loudness war는 신자유주의처럼, 많은 문제를 안고 있으면서도 따라가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는 흐름같은 것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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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아래 그림들은 91년에 오리지널이 발매된 이후 각각 95년, 07년에 재발매된 Michael Jackson의 Black or White 마스터 음원들이다. 요즘의 사람들에게 91년의 믹스를 들려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옛날 소리같다" 혹은 "음질이 나쁜 음원이다"라고 표현한다.

개인도 아니고 대중 전체가 만족도를 느끼는 자극의 역치가 이미 하늘 끝까지 치솟아 있는데, 이걸 고작 스트리밍 서비스의 노멀라이징으로 원상복구 시키겠다는 발상 자체가 전혀 소비자의 동향을 생각하지 않은 탁상공론이라고 느껴진다.


권지용의 USB 앨범과 음반 논란에 관하여 음악글


한국의 저작권법 제 1장 2조 5호는 음반을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음반"은 음(음성·음향을 말한다. 이하 같다)이 유형물에 고정된 것(음을 디지털화한 것을 포함한다)을 말한다. 다만, 음이 영상과 함께 고정된 것을 제외한다.> G-Dragon의 USB 앨범을 국가 공인 음반 집계 단체인 가온차트에서 위 법항을 근거로 들며 음반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잘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참고로 G-Dragon의 이번 신보 <권지용>은 USB 메모리스틱 형태로 피지컬 앨범이 발매되었으며, 그 메모리스틱 안에는 음원이 아니라 음원을 다운받을 수 있는 코드가 들어있다.

다른 얘기에 들어가기에 앞서, 먼저 음반을 규정하는 저작권법을 보자. 음반은 음성과 음향을 유형물에 고정시킨 것을 말한다고 한다. 우선 논란의 여지가 많은 이 법부터가 문제다. 음이 유형물에 고정되었다고 해서 음반으로 불릴 것 같으면 내가 지금 글을 쓰고 있는 내 컴퓨터도, 당신이 이 글을 읽고 있는 그 휴대폰도 음반이라고 부를 수 있어야 한다. 실제로 미국의 저작권법에선 저작권의 최초 발현을 물리적 저장매체에 저작물이 기록된 순간으로 정의하며, 이는 종이에 그린 악보와 하드 디스크 등을 모두 포함한다.
또한, 가령 내가 노이만 U87과 같은 하이엔드 마이크로 무향실에서 연주된 John Cage의 4'33"을 녹음했다고 가정해보자. 그리고 이를 현대음악에 지대한 공헌을 끼친 존 케이지에게 헌정하기 위해 장장 4분 33초동안 디지털 노이즈 하나 잡히지 않은 깔끔한 침묵 트랙을 CD와 같은 피지컬 미디어에 고착시킨 후 발매했다고 하자. 이건 음반이 아닐까? 애초에 음(音)은 소리를 말하며, 소리의 부재를 녹음한 이 앨범엔 저 법항에서 말한 "음"이 없다. 법 자체가 애매하다. 사실 이 모든 분쟁의 가장 큰 문제는 앞서 말한 가온차트도, G-Dragon의 앨범을 음반으로 인정한 한터차트도 아니다. "음"과 같은 애매하고 비전문적인 용어로 음악 저작권법의 가장 기초가 되는 법항을 만든 입법자들의 잘못이 더 크다.

앞서 구구절절 쓴 내용이 전부 잡설이고 사족이라고 보며 말장난하지 말라는 사람도 있을 수 있을테니, 이쯤에서 가온차트 얘기로 넘어가보자. LP가 eight-track으로, eight-track이 카세트로, 카세트가 CD로, 또 CD가 디지털 음원으로 넘어오기까지의 타임라인을 살펴보면, 모든 분야에서 기술의 진보가 그러하듯, 변화와 발전은 기하급수적인 가속도가 붙은 채 달려간다. 나올게 다 나왔다는 발상은 안일한 세상이다. 가령, 당장 내일 누군가가 주사기로 청취자의 몸에 마이크로칩을 주사하면 몸 내부의 진동을 통해 앨범을 들을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낸다고 해도 놀랍기야 하되, 크게 이상할건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하물며 음원과 사진, 뮤직비디오 등을 넉넉히 담을 수 있는 4GB짜리 USB 메모리 스틱에 다운로드 코드 넣어줬다고 그게 음반이 아니라고 집계에 넣네 마네 하는건 기술의 진보를 민망할 정도로 못따라오는 앞뒤 꽉 막힌 사람들이나 할 소리이며, 이 와중에 가온차트는 창피해서 어디 숨어서 해도 모자랄 얘기를 언론에 보도자료까지 냈다. 묻겠다. 그렇다면 권지용의 이번 앨범을 사서 코드를 사용해 전곡을 그 메모리스틱에 담은 팬은 음반을 가내수공업으로 제작한 것인가? 뮤직 비즈니스에 종사한다는 사람들이 좀 말이나 되는 소리를 했으면 좋겠다.

또한, 통상적으로 CD의 한계는 750MB이며, CD에 담기는 다운샘플링된 16bit, 44.1kHz의 마스터 음원은 보통 3~4분 사이면 약 35~45MB 사이의 용량을 차지한다. 40MB라고 계산했을 때 스무 곡이 빠듯하며, 특히 최근 들어 고용량 저장매체의 소형화와 대중화에 따라 대두되는 MQS음원들 (24bit, 48kHz)은 곡당 70~80MB를 훌쩍 넘는 일이 허다하다. 이미 CD를 비롯한 피지컬 미디어의 시장이 음원시장의 등장과 함께 사실상 무너지긴 했지만, 어찌됐건 피지컬 미디어라는게 존재 자체를 하지 않게 되는 날은 아직 먼 얘기고, 없어지지만 않는다면 피지컬 미디어 종말의 그 날까지 끊임없는 변화를 겪을 것은 충분히 예견된 일이었다. 그런 점에서 가온차트의 대응은 흐름의 순간에 조금 늦은 정도가 아니라 이미 물이 마르고 강바닥이 갈라진 옛 강터에 서서 흘러간 물을 원망하는 수준이다. 그만큼 뒤쳐졌고, 촌스럽고, 후졌다.

모든 예술은 작가의 손에서 나오며, 작가만이 자신의 작품에 대한 유의미한 정의를 내릴 수 있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고깃덩이를 들고 와서 "이게 내 음반이요"하는 머리에 꽃 꽂은 소리를 하는 수준으로 상식 밖의 일만 아니라면, G-Dragon이 메모리 스틱에 다운로드 코드 넣어놓고 "이게 내 음반이다"라고 했을 때 그냥 군소리 없이 인정해주는게 맞는 처사다. 아니, 사실 인정이고 자시고도 필요없다. 그가 음악을 만들고 그걸 어떤 형태로 제작하여 음반이라고 부르겠다는 의지 하나면 되고, 그걸 음반이네 마네 할 자격은 "음" 따위의 뜬구름 잡는 단어를 써서 저작권법을 써내려간 사람들 따위에게 없다는 것이다. 음반의 포맷조차도 현대예술이 이만큼이나 대중예술에 침투한 요즘 세상에선 충분히 작가주의의 일부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피지컬 미디어 시장이 급락하며 아티스트들이 미니앨범, (정규가 끝끝내 나오지 않는) 싱글앨범, (무엇의 extension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EP 앨범 등 변칙을 써서 피지컬 미디어로 음반을 찍어낼 때, 이게 음반이냐 아니냐, 혹은 이걸 미니앨범, 혹은 EP앨범이라고 부를 수 있느냐는 논란은 크게 일어나지 않았다. 그놈의 "음"이 "유형물에 고정"돼서였던 것 같다. 상업적인 수지타산의 이유가 됐건 예술적 목적이 됐건간에, 제작자가 앨범이라 부르면 한곡짜리 앨범도 앨범이라 칭할 수 있으며, 전극을 통해 뇌파를 자극해서 머릿속에서 음악을 듣는다는 착각이 들게 만드는 방식으로 전송하는 음반도 제작자가 음반이라면 음반인거다.

마지막으로, 모든 일에는 규칙과 규범이 필요하다.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사람들이 자유로운 표현 방식으로 만들어가는 예술의 세계에도 어느정도의 법과 제도라는 것이 필요하다는데 반대하는 입장은 아니다. 하지만 그 법이 이번 일과 같이 무고한 피해자를 내고 그의 작품을 제 멋대로 도륙낼 때, 우린 이 시스템에 대해 잘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난 사전 심의제를 깨부순 서태지와 그의 팬들의 얘기는 알아도, 저작권법 등 예술에 관한 수많은 법들을 입법하는데 공헌한 사람들은 단 한사람도 알지 못한다. 그리고 난 나름 진지하게 예술을 공부하는 사람이다. 예술가들의 생각과 자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스스로 예술가가 아닌 사람들이 남들과 많이 다른 표현 세계를 가진 예술가들의 표현 방식과 생활 양식을 규정하는 규칙들을 써내려갔다는 것에서부터 무언가 잘못됐다는 인식이 필요한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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